아! 내일도 모레도 출근이야?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묻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읽습니다.

화면이 대각선으로 갈라져 위는 새벽 침실, 아래는 지하철이다. 침실에는 협탁 위 자명종이 있고 한 사람이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본다. 아래 칸에는 같은 양복 차림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각자 손안의 화면만 내려다보고 있다.

1. 월요일 6시 40분

알람이 울렸다. 6시 40분.

손을 뻗어 껐다. 어제도 그제도 같은 시각에 같은 손으로 껐다. 저번주에도 그랬다.

아픈 데는 없었다. 천장에 휴대폰 불빛이 사각으로 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잠깐 보다가 일어났다.

7시 12분 지하철. 두 번째 칸, 문에서 세 번째 자리. 앉을 수 있으면 앉고 없으면 선다. 오늘은 섰다.

이어폰을 꽂고 화면을 켠다. 어제 보던 것과 비슷한 것이 나온다. 나쁘지 않다.

자리에 앉아 컵을 씻고 물을 받아 온다. 메일함을 연다.

하루가 시작된다.

양옆으로 똑같은 문과 천장 조명이 반복되며 멀어지는 사무실 복도.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가운데 한 사람만 걸음을 멈추고 옆을 보고 서 있다. 오른쪽 벽면이 위아래로 길게 갈라져 그 틈으로 흰빛이 새어 나온다.

2. 무대가 무너지는 날

수요일 오후 세 시쯤이었다.

늘 하던 대로 서류 파일을 열고, 늘 쓰던 칸에 숫자를 넣고 있었다. 손이 알아서 움직이는 일이었다. 그러다 손이 멈췄다.

왜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거창한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싫다거나 일이 힘들다는 것도. 그냥 그 문장이 아무 예고 없이 떠올랐고, 나는 예고없는 물음에 답을 해보고 싶어졌다.

돈을 벌려고, 그건 답이 됐다. 돈은 왜 벌지? 살려고. 살아서 뭘 하지?

거기서 멈췄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문장이 끊긴 게 아니라 그다음 칸이 비어 있었다.

옆자리에서 누가 프린터로 걸어갔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화면에는 커서가 그대로 깜빡이고 있었다.

십 년쯤 이 문장 없이 살아왔다는 게 이상했다. 없어서 안 떠오른 게 아니라 떠오를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난간 앞에 선 사람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한 손을 허공으로 뻗고 있다. 손 앞에는 아무것도 없고 텅 빈 하늘과 수평선까지 이어진 잿빛 바다뿐이다. 화면의 대부분이 빈 공간이다.

3. 묻는 쪽과 답하지 않는 쪽

문득 느낀 이상함은 퇴근길에도 따라왔다.

나는 이유를 찾으며 생각했다. 당연한 것이다. 사람은 원래 그런다. 뭘 하든 왜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알아야 다음 걸음이 놓인다.

문제는 물어볼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대답하지 않는다. 나쁜 뜻으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지하철이 오고 사람들이 탄다. 거기에 어떤 말도 섞여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상한 건 나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었다. 나는 묻는 쪽이고 세상은 답하지 않는 쪽인데, 둘 다 잘못한 게 없다. 이상한 건 그 사이였다. 물음과 침묵이 마주 선 그 빈자리.

어지러운 생각 속에 집에 도착해 불을 켰다. 벽이 보였고 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참 그 앞에 서 있었다. 벽을 오래 본다고 벽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낭떠러지로 끊긴 발판들이 층층이 걸려 있고, 사람들이 각자 다음 발판으로 뛰어 건너간다. 건너편에는 십자가가 얹힌 작은 교회, 깃발이 꽂힌 계단식 단, 사다리, 별들이 놓여 있다. 왼쪽 아래에서 한 사람만 뛰지 않고 등을 보인 채 서서 그것을 보고 있다.

4. 뛰어넘기

며칠 동안 사람들에게 슬쩍 물어봤다.

한 사람은 다 계획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안 보여도 나중에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 말을 하는 얼굴이 편해 보였다.

한 사람은 책을 추천했다. 목표를 세우고 아침에 일어나 그쪽으로 걸으면 답은 따라온다고 했다. 목차를 봤더니 답이 이미 다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은 세상이 원래 이렇게 굴러가는 거라고 했다. 위에서 정해지고 아래는 따라가는 거니까 억울해할 것도 없다고.

한 사람은 운이라고 했다.

다들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답들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묻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벼랑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그냥 건너뛰었다. 건너편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수 없으니까 건너뛴 것이다.

건너뛰면 편해진다. 그건 확실해 보였다.

같은 사람의 하루가 여러 칸으로 쪼개져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지하철에서 화면을 보고, 책상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복도를 걸어가는 장면들 사이사이에 자명종이 놓여 있다. 한가운데에 서류가방을 든 사람이 등을 보인 채 서서 열린 문 너머 밝은 바깥을 보고 있다.

5. 그만두면 되는가

금요일 밤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다들 갔고 모니터도 다 꺼져 있었다. 복도 끝 문이 열려 있었고 그 너머는 밝았는데, 그 빛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두면 이 반복은 끝난다. 알람도 지하철도 메일함도 없어진다. 그건 맞다.

그런데 그건 답이 아니라 질문을 없애는 것이었다. 물음이 풀려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물을 사람이 자리를 뜨는 것이다. 답이 안 나온다고 판을 접으면, 안 나왔다는 사실만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옮겨 간 자리에도 아침은 있고 알람은 있다.

그러니까 이건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안고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 그래도 계속 묻는 채로.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앉아 있었다.

세로로 삼등분된 화면. 왼쪽은 연회장에서 한 사람이 곁의 여자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고, 가운데는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이 관객을 향해 연기하고 있으며, 오른쪽은 창을 든 병사들 앞 단 위에서 한 사람이 팔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세 칸 모두 자기 몫의 빛을 따로 받고 있다.

6. 세 사람

주말에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났다.

첫 번째 사람은 한 사람을 오래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매번 진심이었다고 했다. 다만 오래 가지 않았을 뿐이고 그게 거짓이었던 건 아니라고. 다음에도 진심일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사람은 무대에 선다. 두 달마다 다른 사람이 된다. 어제까지 아버지였다가 오늘은 살인자다. 자기가 누구인지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늘 무엇이 되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세 번째 사람은 일에 미쳐 있다. 뭘 이루려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루고 나면 또 다음 게 있을 거라고 했다. 끝이 있느냐고 하니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웃었다.

셋 다 오래 가는 걸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많이 했다. 더 오래 사는 대신 더 많이 사는 쪽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저건 판에서 밀려난 것인가, 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인가.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이어지는 가파른 비탈. 양복 차림의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자기 키만 한 둥근 바위를 밀어 올린다. 위쪽은 넓게 트인 밝은 하늘이고 정상은 화면 밖에 있다.

7. 시지프

시지프는 신들을 속였다.

죽음의 신을 붙잡아 묶어두었다.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다. 신들이 그를 풀어내자, 시지프는 이번엔 아내에게 자기 시신을 광장에 던져두라고 시켜놓고 죽었다. 그리고 저승에 가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은 아내를 벌하고 오겠다며 잠깐만 이승에 다녀오게 해달라고 했다.

허락을 받고 돌아온 그는 다시 내려가지 않았다. 물과 햇빛과 뜨거운 돌과 바다를 다시 보고 나니 저승의 어둠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어졌다. 여러 해가 지나서야 신들에 의해 그는 끌려 갔다.

신들이 내린 벌은 이랬다.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릴 것. 꼭대기에 닿으면 둥근 바위는 제 무게로 굴러떨어진다. 다시 올릴 것.

신들은 쓸모없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무서운 벌은 없다고 생각했다.

바위가 어깨에 닿는다. 뺨이 돌에 붙는다. 흙 묻은 손이 미끄러지고 다리가 버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하늘이 없는 시간과 깊이 없는 공간이 그렇게 지나간다.

그리고 꼭대기에서 바위는 떨어진다. 매번.

같은 비탈. 바위는 이미 오른쪽 아래 골짜기에 멈춰 있고, 사람은 허리를 펴고 팔을 늘어뜨린 채 그쪽으로 걸어 내려온다. 발밑으로 빛이 길게 깔려 있고 멀리 겹겹의 산이 보인다. 위쪽 정상은 비어 있다.

8. 내려가는 길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나면 시지프는 그것을 따라 내려간다.

올라가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숨이 차고 어깨가 눌리고 발밑만 보인다. 생각이 들어올 겨를이 없다.

내려가는 길은 다르다. 손은 가볍고 숨도 돌아온다. 그는 허리를 펴고 걷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 할 수 있다.

이게 벌이라는 것을. 끝이 없다는 것을. 다시 올려도 또 떨어진다는 것을.

여기가 중요한 자리다. 만약 그가 언젠가는 바위가 꼭대기에 얹혀 있을 거라고 믿는다면, 그는 아직 벌을 다 받은 게 아니다.

희망이 남아 있는 사람은 희망이 꺾일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받는고 매번 새로 아프다.

시지프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안다. 알면서 내려간다.

신들이 이 벌을 무섭게 만든 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그 인지였을 것이다.

재밌는 점은 바로 그 인지 때문에 신으로부터의 벌은 시지프에게는 조금 다른 것이 된다.

아는 사람은 속고 있지 않다. 속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바위는 그의 것이다.

바위 옆에 선 사람이 한 손을 바위에 얹고 서서 먼 데를 보고 있다. 발밑은 바위 능선이고 아래로 산들이 겹쳐 있으며 하늘이 넓게 열려 있다. 정상을 표시하는 어떤 것도 없다.

9.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시지프에게 남은 것은 바위 하나와 산 하나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의 것이다. 신들이 준 것이지만 미는 것은 그다. 아무도 대신 밀어주지 않고, 아무도 대신 알아주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산에 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온다. 같은 사람의 두 순간이다.

그를 딱하게 보려면 그가 다른 걸 원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꼭대기에 바위가 얹히기를, 벌이 끝나기를, 여기가 아닌 데로 가기를.

그런데 원하지 않는다면 어떤가? 원하는 것 없이 자기 바위를 미는 사람은 딱한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 사람 얼굴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카뮈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써놓지 않았다.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썼다. 상상해야 한다는 말은, 그렇게 보기로 하는 쪽이 우리 몫이라는 뜻이다.

첫 장면과 같은 구도로 화면이 대각선으로 갈라져 위는 침실, 아래는 지하철이다. 협탁 위 자명종도 줄지어 앉은 사람들도 그대로인데, 침대 위는 비어 있고 두 창 너머로 해가 떠 있다.

10. 화요일 6시 40분

알람이 울렸다. 6시 40분.

손을 뻗어 껐다. 어제도 그제도 같은 시각에 같은 손으로 껐다. 저번주에도 그랬다.

아픈 데는 없었다. 천장에 휴대폰 불빛이 사각으로 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잠깐 보다가 일어났다.

7시 12분 지하철. 두 번째 칸, 문에서 세 번째 자리. 앉을 수 있으면 앉고 없으면 선다. 오늘은 섰다.

이어폰을 꽂고 화면을 켠다. 어제 보던 것과 비슷한 것이 나온다. 나쁘지 않다.

자리에 앉아 컵을 씻고 물을 받아 온다. 메일함을 연다.

하루가 시작된다.

표지로서재로
아! 내일도 모레도 출근이야? — 다시 읽기 — 고독 古讀